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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 플레이 보이 노기자카 이야기 제21화
    이쿠타 에리카/인터뷰 2015. 10. 16. 23:09
    지금,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사상 최강의 아가씨 계열 아이돌그룹 비장의 에피소드
    노기자카46의 역사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노기자카46 이야기
    제21회 이쿠타 에리카의 선택

    2014년 여름. 노기자카46에 커다란 무브먼트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노기자카46의 표제곡을 부르는 "선발멤버"에 들어가지 못한 "언더멤버"에 의한 라이브, "언더라이브"가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노기자카46가 CD데뷔를 한 이래, 계속 선발의 그늘에 서있었던 소녀들에게 일어난 한줄기 빛이었다.
    2014년 4월부터 시작한 언더라이브는, 6월, 7월에도 하게 되는 것으로.
    「한번이라도 사람이 오지 않게 되면 끝」
    그런 상황 속, 언더멤버는 필사적으로 계속 노래하고, 춤춘다.
    그 결과, 「지금, 언더라이브를 봐두지 않으면, 절대로 후회한다!」라고, 팬사이에 화제가 되어 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오랜기간 계속 "언더"라 불러왔던 소녀들은, 새로운 노기자카46의 무브먼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때를 같이해서, 한 명의 소녀가, 어느 결심을 하고 있었다.

    천재라 불려온 소녀, 이쿠타 에리카의 고뇌
    이쿠타 에리카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 뒤셀도르프 출생. 4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쭉 음악에 달라붙어 있듯이 자라왔다.
    피아노와 뮤지컬에 마음이 이끌렸던 소녀는, 「스테이지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여, 노기자카46에 들어왔다. 중학3년생 때의 일이다.
    "천재소녀"
    이쿠타는, 노기자카46에 들어오고나서, 그렇게 불리게 된다. 그 이유는, 음악의 재능뿐만은 아니다.
    노기자카가 매년 하고 있던 「관객이 심사원이 되어 무대에 출연하는 멤버를 고른다」고 하는 오디션형 뮤지컬 『16인의 프린시펄』.
    거기서 이쿠타는, 가창력, 연기력, 그리고 의표를 찌르는 순발력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매년, 늘 톱에 서 있었다.
    또, 버라이어티 방송에도, 천진난만 가득한 캐릭터로 커다란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실로 "완벽"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쿠타 에리카는 고민하고 있었다.
    「노기자카46를 그만둔다」 그런 선택지도 떠올라 있었다.
    生田「2014년. 고교3년으로 수험이었어요. 역시 음대에 들어가고 싶어서……. 수험은 여름이었기에 『양립은 더 이상 한계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공부해두질 않았었고, 피아노도 치지 못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대학에 붙지 못하겠구나하고. 솔직히, 노기자카46를 그만두는 것도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음악으로 대학에 들어간다.
    그것은, 이만저만한 노력으로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력적인 문제는 물론, 실기에 관해서는, 평소부터 상당한 시간, 계속 연주해오지 않으면 안된다.
    음대를 목표로 하는 수험생의 연습시간은, 매일, 지도를 받으면서 5시간부터 8시간은 한다고들 한다. 대학을 목표로 하는 라이벌들은, 그 레벨의 연습을 매년이나 계속하고 있다.
    그런 세계에 승부를 보고자 하는 이쿠타. 사실, 노기자카46의 선발멤버로써 활동하는 그녀는, 절대적으로 피아노를 만지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만약, 정말로 음악의 길을 나아가는거라면……적당한 때일지도 몰라.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머리에 떠오른 것.
    生田「역시, 팬분들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저의 활동을 응원해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팬여러분의 앞에서 몇번이고 피아노를 연주하게 해준 경험. 그건 정말 커다란 힘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쿠타가 처음으로 팬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건, 노기자카46에 들어와 바로. 「컨벤션」이라고 하는, 자신들의 특기 같은 걸 보여준다고 하는 이벤트였다.
    生田「아직 아무것도 아닌 저에게 펜라이트를 흔들어주셔서. 그 빛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 연주했어요. 그 풍경이, 맨첨엔 무척 이상해서. 펜라이트를 보면서 연주하는건 처음이었기에(웃음).……그치만, 어느샌가 그 빛이 마음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그 빛이 있어서 안심하고 연주할 수 있어요.
    그 후에도, AKB48의 이벤트 「AKB48홍백대항가합전」에서, 와타나베 마유상이 노래하는 「너의 이름은 희망」의 반주를 맡게 되기도 했습니다.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찬스를 받았던 겁니다.
    솔직히, 몇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회라는 건, 프로 피아니스트라도 거의 없는 일이에요.
    게다가, 가지각색의 악기와의 앙상블(합주)을 하게 해주거나……. 그러한건, 클래식 세계에선, 정말로 정점에 있는 한정된 분들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 굉장한 걸 체험할 수 있었던 건, 노기자카46라고 하는 조건이었기에. 팬여러분이 지켜봐주시는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그만두면 안돼」라고 생각한 겁니다. 좀더, 이 앞에 있는 다양한 풍경을 보고 싶다고. 「여길 힘내서 극복해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졸업'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쿠타는, 「둘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 길을 고른 것이다.
    2014년 4월 2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에서 행해진 개별악수회에서, 「대학진학을 위한 준비기간으로써, 9th싱글의 불참가. 6월부터, 활동의 일시휴업」이라는 발표를 했다.
    이렇게해서, 이쿠타 에리카, 인생 최대의 도전은 시작된 것이었다.

    "일"과 "수험" 그녀가 고른 대답
    이코마 리나와 노기자카46가 총선거를 끝내고, 첫여름을 맞이할 즈음.
    이쿠타 에리카는, 수험을 맞아 레슨을 이어가고 있었다.
    커다란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의 마음에는, 어떤 "단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쿠타가 처음으로 TV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뮤직페어」라고 하는 방송에서의 일.
    곡은, 「너의 이름은 희망」. 이쿠타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멤버가 노래한다. 그 때의 이쿠타는, 말도 안될만큼 긴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生田「완전히 움츠러들어있었습니다. 정말 연주하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한계. 1회, 리허설을 전원이서 하고, 그 후, 멤버는 대기실로 돌아갔지만, 저는 긴장하면서, 쭉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방송프로듀서가 제게 와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탐욕스럽게」
    방송프로듀서는, 그런 말을 이쿠타에게 주문했다.
    生田「그 말은, 제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움츠러들어있는게 아니라, 「탐욕스럽게 음악을 느끼고, 즐겨」라고. 여유가 없는 제게, 좀더 시야를 넓히세요라는 마음으로 말씀해주셨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듣고나서, 그 당시의 저로써는, 즐기며 연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곳에서 연주하고 있지만……그 말을, 먼저 자신에게 타이르고나서 연주하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탐욕스럽게. 음악을 바라고, 느낀다.
    대학수험을 향한 레슨은, 그 말을 반복하고 반복해 읊조리며 계속해나갔다.
    그런 어느날, 어떤 통지가 이쿠타 앞으로 도착했다.
    그건, 테즈카 오사무의 원작을 토대로 한 뮤지컬, 「무지개 프렐뤼드」 주연 오퍼였던 것이다.
    生田「깜짝 놀랐습니다.뮤지컬은, 제가 노기자카46에 들어가기 전부터 목표였었기에. 받을지 말지 정말 망설였습니다」
    극의 공개는 10월. 수험이 끝나고, 결말이 어찌되든 노기자카46에 복귀해있을 타이밍이다. 게다가, 연극을 위한 연습은 당연히, 수개월전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연극중에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씬도 있어, 그를 위한 연습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 일을 받는 것. 그건, 수험을 위한 레슨에 지장을 주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쿠타는 오퍼를 응할 결심을 했다.
    「가득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양보할 수 없다고. 그냥, 자신의 피를 말려보자. 「전부 다 해주겠어!」라고 정한겁니다」
    탐욕스럽게.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소녀는 선택했다. 도전은, 더욱더 혹독한 것이 되었다.
    하루 온종일, 식사시간 이외는, 언제나 피아노를 연주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풀이하는 매일이었다.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연극 연습이 있는 날 이외는, 피아노에 매진했다
    「맨첨엔, 연극 연습 시간은 피아노를 만질 수 없는게 불안했습니다. 그치만 다행스럽게도, 제 수험 자유곡이 쇼팽의 「혁명」이었던거에요. 그래서, 때마침 「무지개의 프렐뤼드」라는 연기도, 그 쇼팽의 「혁명」이라는 곡에 관한 이야기였던거에요. 게다가, 연극 종반에서, 그 「혁명」을 연주하는 씬이 있어요. 그래서 연극연습을 하면서, 수험 연습도 됐어요. 신기한 연계라고 할까……그 덕분에, 피아노 실력은 무뎌지지 않게 끝났습니다. 거기에 연습장에 피아노가 있으니까, 빈 시간중엔 피아노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적이라고도 할만한 상황도 아군으로, 이쿠타는 마지막 총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맞이한, 수험일.
    「실기 시험 직전. 마음속으로 "탐욕스럽게"라고 읊조렸습니다. 지금까지의 여러가지가 떠올라서. 「혁명」을 연주할 때는, 연극에서, 이 곡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러 씬을 떠올리면서 연주했습니다. ……정말 엄청난 긴장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많은 스테이지에서 연주를 하게 해주었지만, 혼자서 연주하는 쪽이 훨씬 긴장됐습니다.
    ……저, 피아노란 고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쭉 혼자였었고. 틀리면 전부 스스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돼. 멈추면, 끝. 인생에 있어서, 피아노가 제일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유쨩, 쭉 목표였던, 친척으로 음악프로듀서인 사쿠마(마사히데)상과의 세션(그 모습은 7장째 싱글 『바렛타』에 수록. 사쿠마씨는, 당시 위암을 앓고 있어, 이쿠타와의 세션 수개월후에 운명을 달리했다). 다양한 경험으로 『음악이란 즐겁구나』라고, 처음으로 느끼게 됐습니다. 즐거움이 무서움을 상회한겁니다」
    혼자가 아냐.
    멤버, 팬. 「혁명」을 연주하는 이쿠타의 등을, 분명 많은 손이 지탱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인생최대의 도전을 한 이쿠타.
    결과, 수험은 훌륭히 합격.
    노기자카46도 대학도, 뮤지컬도, 무엇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말도 안될만큼의 노력을 거듭했던 것이다.
    꿈을 쟁취한 소녀는, 또 한번 성장해서, 동료들 곁으로 돌아갔다.

    휴업으로부터의 복귀. 도착한 선물
    2014년 7월.
    『노기자카가 어디?』녹화일.
    스튜디오에는, 노기자카46 멤버 전원이 집결해 있었다. 10장째 싱글 선발발표였다.
    거기엔, 물론 AKB48 겸임이 된 이코마도, 수험으로 인한 휴업에서 복귀한 이쿠타의 모습도 있었다.
    生田「실은 수개월, 노기자카와 떨어져있는 동안에, 저, 평범하게 노기자카 팬이 되어있었어요. TV에 멤버가 비치는 걸 보며 「와~, 귀여워! 역시 노기자카는 틀려!」라고(웃음). 자신이 거기에 있었던 걸 잊을 정도로. 그래서 녹화에 갔을 때도……약간, 멤버와 얘기하는 게 긴장돼, 같은. 「일단, 녹화에 복귀할 수 있는 걸 즐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복귀 첫발이기도 하고, 어느 위치라도 열심히 하자. 만약 이름을 불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있을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쿠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6인 선발 그룹.
    그 마지막으로, 이쿠타의 이름이 불렸다.
    휴업 끝난 직후, 복귀하자마자 느닷없는 센터 지명. 그 때의 이쿠타는, 실로 "망연자실" 상태였다. MC인 바나나맨이 코멘트를 요구해도, 잠시간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지 않았던걸까, 잘 얘기할 수가 없었다.
    「……실감이 안 나서. ……돌아와서, 갑자기 여기(센터)라는 건, 스스로 느끼기에도 복잡한 감정도 있고……뻔뻔스럽게 느껴지겠다 싶고……그래도, 제가 가진 파워를 가득 꺼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죄송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쿠타와 같은 학년으로, 나카모토 히메카와 세 명이서 "중3트리오"라 불리고 있는 사이토 치하루.
    「그 때의 이쿠쨩은 정말로 방심상태여서. 꽤나 불안해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척이나 기뻐서. 저, 쭉 가까이서 보면서 「이쿠쨩은 완벽한데, 어째서 센터가 되지 못하는 걸까」「좀 더 재능이 전해지면 좋을텐데 말야」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드디어 이쿠쨩이 센터로 빛날 수 있는 곳에 왔어!」라고 정말로 기뻐서. 실은 제 자신도, 10장째에 처음으로 선발진입 할 수 있었어요. 히메탄(나카모토 히메카)도 함께였으면 좋았었겠지만……그래도, 녹화후에, 히메탄에게 들었습니다. 「이쿠쨩을 받쳐주렴」이라고」
    그리고, 이코마 리나.
    「이쿠쨩의 센터는, 계속 모두가 바라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쿠쨩은 태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코마는 달. 조금 못하는 달이 옆에 있는 편이, 완벽한 태양이 정가운데에 왔을 때 돋보일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될 수 있었던 게 10장째라고 생각해요. ……뭐, 이코마는 2열째였기에, 이쿠쨩의 오른쪽에서 슬쩍슬쩍하고 튀어나오는 달이었다는 걸로(웃음)」
    이렇게해서, 10장째라고 하는 기념비적인 싱글에서, 이쿠타 에리카는 노기자카46의 센터에 섰다.
    그것은, 많은 꿈을 무엇하나 포기하지 않았던 소녀의 "노력"에 대해 보내진 선물이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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